무신란이 일어나고 몇 해 지나지 않은 시기의 고려. 해 저문 벽란포구 뒷골목을 비틀비틀 걷고 있는 거지 소녀의 이름은 홍이다. 얼마 전 그녀가 청녕재 돌산의 노역장을 목숨 걸고 탈출해, 천리길을 걸어 벽란포구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 이곳에 있는 한 다원(찻집)에 억울한 사연을 가진 자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험한 불상이 있어 거기에 진실로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문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상이 있는 다원에는 홍이는 물론이고, 포구에 사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다원에 사는 세 명의 여자들에 관한 것으로, 사실 이들은 지난 무신정변에서 공을 세워 신분이 해방된 여협들이었다. 그들은 불상이 있는 방의 뒷벽에 숨어 이들의 하소연을 몰래 듣고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해결을 해주는 해결사 노릇을 틈틈이 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이 노비 소녀가 가진 사연은 여기 이 포구의 흔한 백성들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녀는 당시 무신최고관료인 상장군 최웅의 목을 자기 손으로 베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고 있었기 때문이다.